아리조나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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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은 그저 하나 더 알고 있는 정보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생각은 그 사람의 평생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기도 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생각

그래서 그가 가진 그 생각이 그의 인생을 이끌만한 능력이 있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의 의미가 얼마나 고귀하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인지를 압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죽기까지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에 이끌려

때로는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용서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오늘 말씀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을 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많은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또 어떤 노력이 그 사람을 그렇게 비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갈까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고백으로 비운 마음을 소유하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덤으로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고

그래서 이제는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고,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우리가 가진 지식을 감동하여 열정으로 바꾸실 때 가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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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Romans 14: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우리는 천국을 이야기 할 때 죽음 후에 맞이하는 세계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사후 세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장소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 관계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풍요로운 장소가 있다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다면 

아마도 그곳은 반드시 지옥일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관계적인 개념으로 접근할 때

로마서 14장 17절은 더욱 분명하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천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물질적)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관계적)입니다.

'성령 안에 있는'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하에서'라고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갖는 의로움, 평화로움, 기쁨은 과연 우리가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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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 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1Corinthians 9:19

"Though I am free and belong to no man, I make myself a slave to everyone, to win as many as possible."


성도의 삶은 자유를 얻은 삶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기 전까지 죄와 사망의 종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무엇을 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죄와 욕심이 끄는 대로 끌려다녔었고

죽음이 두려워 건강과 장수에 많은 관심과 부단한 노력을 쏟으며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을 행할 자유를 얻었고, 오늘 생명이 끊어져도 하나님의 품에 간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유한 사람이지만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종처럼 삽니다.

이렇게 사는 삶은 비굴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지배를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손해 보는 것을 자처하고 때로는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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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장 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Gen 50:20

"You intended to harm me, but God intended it for good to accomplish what is now being done, the saving of many lives."


우리는 요셉의 꿈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을 말하면서 요셉을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요셉의 꿈은 요셉이 높은 사람이 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요셉을 높은 자리에 올리셔서 무엇을 하게 하려하셨는지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두 번의 꿈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또 그의 부모에게 하였습니다.

그 처음 것은 형제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였다는 것이고

그 다음 것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라고 하며 요셉을 책망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 요셉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 나빠했습니다.

어쩌면 요셉도 처음에는 그 꿈을 그저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었고 하나님의 꿈이 실현될 때 그 꿈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인류의 꿈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권력을 주실 때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정치의 근본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와 재력을 주실 때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경제의 근본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열심히 근육을 키우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이 소년은 꾸준히 운동한 결과 몸이 제법 멋진 볼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몸을 가졌으면서도 일 하기를 싫어합니다.

일 하지 못하는 근육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해를 입힌 요셉이 자신들에게 보복을 할까 두려워하여 어쩌면 거짓말일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유언 '을 요셉에게 들려줍니다. 자신들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때 요셉이 한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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