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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최상의 과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며, 또한 우리가 벌거벗었으나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살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므로 다시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해 줄 수 있는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잃어버린 죄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생명을 교회를 통하여 얻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머리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몸이다. 주님은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기대하시며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주님의 성취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교회는 주님이 보내신 성령님과 함께 이 사명을 이루어야 할 생명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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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 물론 제자들을 통하여 전도의 일을 하게 한다고 우리는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고기 잡는 어부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고기에 대한 관심을 사람에게로 옮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의 경우라면 “차를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여기서 고친다는 의미보다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말의 후자 “사람”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에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형제 사랑으로 증거 할 수 있다. 우리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치과 의사가 사람을 소중히 보지 못하면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게 아직 발치할 시기가 이르지 않은 치아를 뽑고 인플란트를 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명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환자의 치아를 보존하려고 힘쓸 것이며, 그는 환자의 고통을 긍휼히 여기게 될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아담의 갈비뼈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경우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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