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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하였다. 하나님은 왜 전도라는 방법을 사용하시나?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번개를 맞아죽었으나 나머지 한 사람이 살아남았다면 그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움으로 인간의 마음을 얻고자 하지 않으셨다. 만약 하나님이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셨다면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 자기비하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마굿간에 태어나시지도, 나사렛에서 자라나는 과정을 겪으시지도, 어린 나귀를 타는 예루살렘의 왕이 되실 이유도, 힘없는 자처럼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해 지는 길을 선택하셨다. 전도자의 전도는 단순히 복음을 외치는 외침만이 아니다. 그는 대상자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써야 하고, 약속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는 대상자 때문에 속상한 일을 많이 겪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의 긴밀하고 소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우리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맺게 되는 생명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전도의 방법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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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개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말하지만 또한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으로서 성령이 그 전으로 삼는 것은 개인적인 “나”보다 공동체적인 “우리”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실 때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을 조건으로 건다. 에베소서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 서로 연결하고 도움을 입어 함께 지어져간다.

공동체성은 대단히 중요성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동시에 수백만 명을 한꺼번에 만드실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한 사람 아담을 만들고,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을까? 아담의 갈비뼈는 아담의 희생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공동체는 사랑의 희생을 그 기초로 한다. 아담이 갈비뼈를 내어주는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하와를 볼 때 “과연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감격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우리가 연상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본 받을 때 그 공동체는 생명 공동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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