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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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원을 말할 때, 죄 사함, 병의 치유, 민족적 해방, 불행한 삶으로부터 탈출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리는 "관계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에 놓였던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구원의 초점이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까지 다 포함해야 한다. 만약 구원의 초점이 흐려지면 우리가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하는 전도자의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부처님을 믿어서 극락에 간다."고 하는 반론에 직면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의 초점이 흐려짐으로 인해 갖게 된 혼란이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죽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초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다. "내가 부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나요?" 이 말은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옆집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면 우리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될 수 있나요?" 인격적인 관계의 측면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부흥집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요청을 접해 본 어떤 이가 자신은 예수님의 우편강도의 경우처럼 죽음에 임박하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우리가 관계적인 측면에서 재고해 본다면 그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를 알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죽음에 임박해서 영접기도 한 번으로 예수님과 좋은 관계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관계에서 조차 우리는 그 어느 누구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서로 자주 만나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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